두 번째 작품은 그해 11월 국내 초연된 연극 <겨울꽃>이었습니다. 일본 극작가 가네시다 다츠오의 원작을 토대로 한 이 연극은 당시 80석밖에 안되는 초라한 극장에서 공연됐습니다. 하지만 한국공연계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안중근 거사의 진정한 의미를 ‘반전’을 통해 ‘발견’해내는 미학적 성취를 보여줬습니다.
이 작품은 안중근이 쏜 총탄 중 이토에게 명중된 세 발의 총성소리에 초점을 맞춥니다. ‘쾅, 쾅쾅’하고 들리는 이 소리는 일본인들에게 죽음의 소리로서 불안과 공포를 야기합니다. 하지만 그것이 안중근이 어머니 뱃속에서 들은 심장 박동소리, 곧 생명의 소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안중근 의거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납니다. 근대일본을 사로잡았던 ‘죽음의 윤리’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‘생명의 윤리’를 새로 쓰기 위한 역설의 저항이었음이.